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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statos


홀로 서있는 자.



그러니까 그러려니 한다. 한 두번도 아니지 않나. 섭섭하지 않다, 아무렇지 않다, 그런다면 거짓말이지만 못견딜 정도는 아니다. 새삼 아 빨리 신림동으로 가자. 어차피 혼자인 곳으로 가자. 내 마음을 정하게 해준다. 밀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자리가 없다. 넘을 수 없는 벽, 결코 따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나도, 그들도 아는. 그들에게, 정확히 말하면 그 중의 한 타인에게 나의 존재는 밥먹는 사람일 뿐이고 사실 그것만 충족된다면야 굳이 내가 아니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할거다. 그게 다다. 내 3년의 시간의 끝은 결국 그거다. 그래서 그러려니 한다. 그러려니 산다. 어떡할거냐. 사실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새삼 슬퍼하지 않아도 괜찮다.

고교시절 제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던 친구가 재수를 했었다. 재수하는 동안 한 번인가, 만나러 갔었고 그 후에도 몇 번 만나기는 했었다. 나는 고등학교 같은 반 녀석들 중에서 내가 제일 그 녀석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녀석의 스무살은 내가 공유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석의 스무살은 변화와 굴곡과 성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종류의 것들로 들어차있어서 더 이상 나는 그 녀석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지 못하게 되었다. 재수를 시작하고 처음 만났을 때(여름이었다) 그 녀석의 묘하게 안정된 눈빛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정신과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고 있다고 했고, 남자친구도 있다고 했고, 재수학원 같은 반이던 고교동창과 베프를 먹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녀석 집에 가서 맥주를 한 캔 마시고, 만화책을 보다가 자버렸다. 새삼 우리 사이에는 밤새 나눌 이야기는 없구나 싶어서 절박해졌다. 무슨 이야기든 밤새 나눌 것이 없을까 내내 고민하면서 실없이 야 이 만화책 존나 웃기지 않냐 야 이게 명작이야 이런 이야기만 하다가 야 졸리다, 하고 자버렸다. 자기 집이고, 자기 방이고, 자기 침대여서 그랬겠지만 그 녀석을 참 잘 잤고, 무딘 나도 잘 잤다. 다음날에 아침잠이 많은 그 녀석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을뿐.


사실 그때의 나는 무척 힘들었다. 기껏 들어간 대학은 뭐하는 곳인지 나를 두근두근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딱히 교우관계도 끈끈하지 않았고, 학점도 그저 그랬고, 전공 수업은 아 내가 대학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다시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배우는 내용은 새로운 것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던 여러분의 선배가 시험이 붙고 찾아왔는데 살이 쫙 빠지고 옷도 예쁘게 입고 너무 예뻐져서 못알아봤었다, 붙으니까 좋다, 여러분도 열심히 해라. 사실 이 말은 한 것은 딱 한 수업, 딱 한 번, 딱 한 교수님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인정하기 싫어서 비밀로 했지만 나의 첫사랑은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바로 그 해 오월에 내가 그렇게도 탐탁치 않아하던 1년 6개월인가 2년짜리 연인이랑 결혼을 해버렸고 나는 바보같이 차려입고 예식장에 가서 엉망이던 결혼식을 보고나서 한강에서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그 후로는 나의 첫사랑과 연락다운 연락을 하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만나보지도 못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사실 나의 첫사랑이 내게 주었던 안정감은 어린 나에게는 정말 엄청났어서, 나는 내가 고등학교에 시험쳐서 들어가고, 또 대학에 들어간 것도 심적으로는 다 그 사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원체 건강이 좋지 않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던 아버지가 몇 년째 투석을 하시다 신장이식을 받으러 중국으로 갔던 것이 고3 3월. 그런 아버지 등쌀에 나는 돼지고, 나는 노예다 라는 말을 하시기까지 이른 어머니가 지내온 힘들었던 그 몇년. 무슨 일이 있어도 고등학교는 기숙사 있는 곳으로 들어가겠다, 아니면 적어도 집에서 한 시간은 걸리는 곳으로 가겠다 싶던 내가 선택한 나의 학교. 십대의 위기는 부모님을 잃는 것이고, 이십대의 위기는 꿈을 잃는 것이라는 말처럼 가정이 곧 내 삶이요 존재였던 십대에 어머니의 불행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무관심은 의외로 그 영향이 컸었다. 자존심이 세고, 또 말이 퍼져나가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친구들에게도 얘기를 하지 않았고, 다만 나의 첫사랑에게만 그것도 아버지가 아프다, 라고만 털어놓았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의 첫사랑이 보낸 문자가 있다. 수술 받으러 중국에 가신 부모님 때문에 혼자 일어나서 밥먹고 씻고 청소하고  여섯시 반에 스쿨버스 탔던 시절, 다섯시 몇 분엔가 문자가 왔다. 새벽기도 한다고, 너와 너의 아버지를 위해서도 기도했다고. 눈물이 나오지 않는 무감각한 내가 싫었다. 그 때 다짐했다. 이 사람을 저버리면 나는 벌받을 거라고. 나중에 어떻게 되든 나는 이 사람을 저버리면 안된다고.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지 못한다. 사실 그 사람이 내게 미움받을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실패한 첫사랑에 아무 이유도 없이 미워해볼만도 한데 그러지 못한다. 다만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부디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불행했던 어머니와 그런 사람을 만날까 두렵게 했던 아버지와 뭣도 모르고 보내버린 첫사랑 때문에 사랑을 믿지 않는다. 결혼은 더욱 그렇다. 그런 사람 만날것이 뻔한데 그렇게 살 것이 뻔한데 결혼은 왜하나. 연애는 왜 하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아직도 조금 남아있다. 극복은 하겠지만, 잊지는 못할거다.

제일 친했다고 믿은 녀석은 내가 없었던 시간동안 또 그렇게 변해버렸고 나는 그대로 있다. 섭섭함과 허전함을 느끼고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들과의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고는 무력해한다. 그리고는 곧 잊는다. 담아두어봤자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이 관계는 어떻게 될까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친구들은 하나 둘 씩 떨어져나가고 혼자 맥주에 취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인생이 이렇다.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관계맺기는 여전히 어렵다. 내가 경애하지 마지 않았던 나의 첫사랑도, 어려운 것은 인간관계라고 말했다.

by 모노스타토스 | 2009/06/21 23:5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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